제로웨이스트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첫 고민은 보통 ‘무엇을 버릴까’입니다. 넘쳐나는 일회용품, 안 쓰는 플라스틱 용기, 구석에 쌓인 택배 상자들. 정리해야 할 것이 너무 많으니 당연한 고민이겠지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책에서, 유튜브에서 본 대로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기 시작했고, 주방, 욕실, 옷장을 비우며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점이 생겼습니다. 분명히 한 번 비웠는데, 다시 물건이 쌓이기 시작한 거예요. 안 쓰는 화장품 샘플, 충동적으로 산 텀블러, 무료 증정으로 받은 사은품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습니다. ‘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애초에 들이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다음 글은 '버리는 기술'보다 중요한 '안 들이는 기술'을 알아보겠습니다.
우리의 소비는 생각보다 무의식적입니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선택을 합니다. 커피 한 잔을 살 때,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온라인 쇼핑을 할 때. 그리고 이때마다, 우리는 작은 쓰레기들을 끊임없이 들이고 있습니다. 일회용 컵, 비닐 포장, 제품보다 큰 박스와 뽁뽁이까지. 놀랍게도 대부분은 '그냥 그렇게 하니까'라는 이유로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죠.
더 나아가 ‘무료’, ‘할인’, ‘한정 수량’ 같은 말은 소비 욕구를 더 자극합니다. “안 사면 손해일 것 같아서”, “나중에 쓸 수도 있으니까”라는 이유로 지갑을 여는 순간, 우리는 또 하나의 쓰레기를 집 안에 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그 물건이 얼마나 오래 쓰였는지, 쓰레기가 되기까지 얼마나 빨랐는지 돌아보면 씁쓸한 마음이 들죠.
들이지 않는 습관을 만드는 3가지 질문
그렇다면 어떻게 ‘안 들이기’를 실천할 수 있을까요? 저는 물건을 소비하기 전에 세 가지 질문을 던져봅니다.
1. 지금 정말 필요한가요?
순간의 감정으로 사려는 건 아닌지 점검해 보세요. 단지 기분 전환용이라면, 소비가 아닌 다른 방법도 있을 수 있습니다.
2. 이미 비슷한 게 집에 있지 않나요?
같은 기능의 제품이 집 안에 하나 이상 있다면, 굳이 새로 살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3. 최소 1년 이상 쓸 수 있나요?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인지, 단기간 사용하고 버릴 것인지를 떠올려 보세요. 장기 사용이 어렵다면, 대여나 중고 거래를 고려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 세 가지 질문은 단순하지만 강력합니다. 처음엔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습관이 되면 소비 자체가 줄어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삶이 더 깔끔해지고, 후회도 줄어듭니다.
버리는 기술보다 더 어려운, 들이지 않는 기술
버리는 일은 어쩌면 쉽습니다. 집 안을 둘러보고 마음먹으면, 정리함에 물건을 쓸어 담고, 재활용장에 갖다 버리면 되니까요. 그런데 들이지 않는 건 그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끊임없이 유혹이 있고, 주변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갖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다’는 불안감도 따르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 번 안 들이기 시작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 달라집니다. 오히려 주변이 단순해지고, 나에게 꼭 필요한 것만 남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비워진 공간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채워진 공간에서 오는 편안함이 생깁니다. 그런 공간에서는 소비가 목적이 아닌, 삶이 중심이 됩니다.
들이지 않는 습관이 만드는 의외의 효과
‘안 들이기’를 실천하다 보면 삶의 다른 영역도 달라집니다. 첫째는 시간입니다. 더 이상 쓸데없는 쇼핑에 시간을 쓰지 않게 되고, 검색, 비교, 결제에 드는 수고가 줄어듭니다. 둘째는 돈입니다. 필요 없는 소비를 줄이니 자연스럽게 지출도 줄어듭니다. 셋째는 마음입니다. 내 선택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고, 불필요한 물건이 주는 스트레스가 사라집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내가 소비를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광고나 트렌드에 휘둘리지 않고,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생기죠. 이건 단순한 소비 습관을 넘어,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제로웨이스트의 첫걸음은 들이지 않는 태도입니다
제로웨이스트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분리배출 잘하기’, ‘다회용 쓰기’, ‘포장재 줄이기’ 등을 떠올립니다. 물론 모두 중요한 실천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나의 ‘태도’입니다. 나는 소비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이 물건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들이기 전에,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제로웨이스트의 진짜 시작입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더하려고만 합니다. 더 좋은 물건, 더 많은 기능, 더 예쁜 디자인. 하지만 진짜 삶의 질은 ‘빼기’에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들이지 않는 습관은 내 공간을 정리하고, 내 시간을 지키고, 결국 나의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줍니다.
마무리: '소비'가 아닌 '선택'의 감각을 길러보세요
들이지 않는다는 건 단순히 물건을 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 삶에 무엇을 들일지 더 신중하게 선택하겠다는 의지입니다. 그래서 이 실천은 ‘절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입니다. 소비를 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죠.
오늘 하루, 새로운 물건을 들이기 전 한 번만 멈춰보세요. "이 물건은 나에게 필요한가?",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을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이미 제로웨이스트는 시작되고 있습니다. 버리는 기술보다 어려운, 그러나 더 근본적인 ‘들이지 않는 기술’. 그게 바로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소비의 첫걸음입니다.